Art Criticism

생명의 기운으로 표현되는 자연과의 교감과 동화

강석진 2019.04.08 09:07 조회 406

김 상 철 / 미술평론가


연두, 초록빛이 어우러지는 풋풋하고 건강한 생명력을 지닌 자연은 작가 강석진의 작품을 개괄할 수 있는 특징적인 것이다. 그의 작업은 특별히 빼어난 경관이나 유명한 명승지를 표현한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우리의 산과 들이 어우러지면서 이루어내는 소박하고 정감이 있는 표정들을 섬세한 감각으로 진지하게 포착해 내고 있다. 산과 산 사이에 들판이 펼쳐지고, 들판 사이에는 느리고 여유있게 구불거리며 흐른 강물이 등장하는 그의 화면은 여유롭고 서정적이며 안온하여 그 자체로 정감이 가는 우리의 산하이다. 자연스러운 곡선들이 교차하며 이루어내는 그의 산하에는 우리의 삶의 애환이 담겨있기도 하다. 그는 이러한 자연을 기교를 통해 과장하거나 작은 재치로 꾸며 수식하지 않는다. 오로지 성실하고 진지한 필촉으로 산과 들을 쓰다듬으며 그것을 감싸고 있는 공기들을 보듬어 안고 있다. 그것은 자연에 대한 진지한 접근과 성실한 표현의 결과이다. 그럼으로써 그가 표현해 내는 자연은 가공되고 수식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풋풋하고 순수한 자연 본연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작가의 작업은 전형적인 풍경화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몇 가지 특기할 만한 내용들을 통해 자신의 시각과 감회를 분명하게 표출해 내고 있다. 그의 화면에는 유독 연두, 녹색의 자연이 많다. 그것은 그저 눈에 비치는 신록의 자연이 아니라 습윤한 공기로 상징되는 생기의 자연이다. 자연을 그저 묘사나 재현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근본으로 인식하고, 그 구체적인 표현을 생명의 기운으로 이해하여 표출하고 있는 것이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맑고 화창한 햇살의 강렬함을 남성에 비긴다면, 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그윽함은 여성의 그것에 비길 것이다. 모든 것의 근본으로 어머니 대지라 표현되는 자연에 대한 작가의 시각은 대상과 대립하는 간()의 시각이 아니라, 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둔 채 관조하고 관찰하는 관()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할 것이다. 그것은 대상이 되는 자연을 작가 임의로 취사선택하여 취하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시각이 아니라, 자연과 합일되고 교감하며 동화되고자 하는 또 다른 시각이다. 그럼으로 자연은 그저 표현의 대상이 되는 물질의 세계가 아니라 상호 교감하며 조화를 이루는 궁극적인 실체로 인식되게 된다. 작가가 대자연의 생명감이 있는 습윤한 대기의 표현을 통해 생명의 기운을 표출하고자 노력함은 바로 자연에 대한 이러한 시각과 관점이 반영된 결과라 할 것이다. 이는 비록 양태로는 서양의 풍경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대상에 대한 접근과 수용에 있어서는 동양적 사유와 사고를 바탕으로 한 독특한 해석과 감성이 투영된 것이 여실하다 할 것이다.

작가의 화면은 일상적인 우리의 산야를 주로 다루고 있다. 산과 들이 있고 물이 흐르는 평이하고 일상적인 자연이 그가 즐겨 취하는 소재이다. 세계의 구석구석을 두루 주유하며 갖은 풍광들을 섭렵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우리 산하에 대한 절절한 애정을 통해 자신의 태생적 감성을 확인하고 있다 할 것이다. 어린 시절 향리에서의 추억과 감흥, 그리고 이를 통해 배태된 풍부한 감성들은 또 다시 예전의 그 자연들과 조우함으로써 잊혀져가는 아련한 정서를 되살리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의 화면에는 새로운 것이라기보다는 익숙한 것들로 점철되어 있다. 그러나 그 익숙한 것들은 그것에 대한 절절한 애정을 바탕으로 정서와 감성을 환기시킴으로써 오히려 더욱 새롭고 애잔한 감흥으로 다가온다.

작가의 화면은 특정한 시점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 또다른 특징이다. 그것은 일상적인 시점보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조망하는 듯한 부감의 시점을 차용하여 화면의 넓이와 깊이를 확장시키고 있다. 이는 물리적인 투시법이나 원근법을 원칙대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작업 의지에 따라 공간을 경영함으로써 얻어진 결과이다. 그럼으로 화면의 공간은 더욱 넓어져 산 뒤의 공간을 표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좌우로 펼쳐지는 시점 밖의 자연까지도 수용해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비록 합리적인 투시와 원근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그 실체는 심리적인 공간의 설정이라 할 것이다. 단순히 대상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와 재현에서 벗어나 공간을 경영하고, 그 결과를 통해 더욱 그윽한 공간의 깊이와 넓이를 확보해 내는 것 역시 자연에 대한 작가의 독특한 시각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자연과의 관계를 여하히 설정하는가에 따라 그 표현은 달라지게 마련이다. 일반적인 풍경화가 자연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묘사와 재현을 원칙적인 덕목으로 삼는다면, 작가는 오히려 자연과의 합일을 통해 그 내면 속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경우라 여겨진다. 특히 자연과의 교감이나 동화를 강조하는 그의 조형관은 동양적인 범신론(汎神論)과도 맞닿아 있다고 여겨진다. 그것은 자연을 대립의 대상이 아닌 합일(合一)의 궁극적인 실체로 인식하는 동양의 산수화적 이해와도 일맥상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우리 산천에 대한 애정과 습윤한 공기를 통한 생명의 표출, 심리적인 공간의 구축, 그리고 부감을 통한 공간의 넓이와 깊이의 확보 등 작가의 작업 특성을 규정할 수 있는 여러 요소들과도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의 작업이 단순한 풍경화의 형식주의에 함몰되지 않고, 본연의 독특한 가치를 견지할 수 있음은 바로 이러한 요소들이 적극적으로 작용한 결과라 할 것이다.


작가의 작업은 자연에 대한 솔직한 접근과 진지한 표현으로 일관된 것이다. 그것은 단지 자연의 외형만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내재하고 있는 생명의 기운을 포착하고 표현하기 위한 작가의 진솔한 작업 방식이라 할 것이다. 자연을 위대한 실체로 인식하고 이와 동화되기 위해 작가는 온몸으로 교감하는 그만의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것이 지식이나 기교에 의탁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과 순수에서 발현하는 것이며, 그것이 존재의 우열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외경과 긍정의 건강한 가치를 전제로 한 것이기에 그의 작업은 특정한 내용에 구애됨이 없이 그 지평을 확장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작가로서의 입지와 독특한 예술세계를 확보한 그이지만, 그의 이력은 일반 작가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는 작가 이전에 성공한 기업인으로 각인되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General Electric의 한국 사업을 20년간 총괄해 온 CEO로서, 서강대학과 이화여대의 겸임교수로 그의 이력은 기업인들 사이에 두루 회자되며 존중되는 바이다. 그는 또한 시인으로서 문학계에 잘 알려져 있으며 한국의 시 부분 문학상 대상을 네 차례 수상한바 있다. 그의 시집 우리가 어느 별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에는 그에게 시상을 떠 오르게 한 어머님의 품처럼 따뜻한 대자연의 모습을 화폭에 담은 그의 풍경화들이 시와 함께 있다. 그의 미술 세계와 시의 세계는 서로가 밀접한 영적인 관계가 있다. 또한 그의 창조적인 경영의 성공은 예술과 경영이 융합된 종합예술 이라고 표현 할 수 있다.일반적으로 다른 전문분야를 가진 분이면서 화가로서의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치열하고 부단한 노력과 미술에 대한 열정, 자기 개발을 통해 이러한 한계를 훌쩍 뛰어넘어 자기 자신의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구축 했다. 이는 물론 삶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내면에 이미 태생적으로 작가로서의 불씨가 내재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삶이라는 조건과 상황에 의해 발현되지 못하였던 그 불씨는 극히 소소하고 우연한 조건과 맞닥뜨림으로써 본연의 발화점을 확인하고 치열하게 타오른 셈이다. 그것은 어쩌면 아주 오래전에 이미 예정되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필연으로 수용하여 발화시킨 작가의 적극적인 행위와 실천이 전제되었기 때문임은 자명한일일 것이다. 기업 경영인으로서의 성공과 치열한 작가로서의 삶은 일견 양립하기 어려운 것이라 여겨질지 모르지만, 적어도 작가에게 있어서만은 이 두 가지 상이한 가치와 체계는 상호 작용하며 상생의 에너지를 생성하고 있다 할 것이다. 그는 자신의 태생적 감성을 통해 길러진 건강한 시각으로 자연을 관조하고 교감하며 자신의 실존과 그 의미를 화필을 통해 화면 속에서 확인하는 확고한 자기세계를 지닌 작가이다. 이제 강석진이라는 이름에 경영인이라는 수식어는 사족과도 같은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