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들과의 이야기

먼 동쪽 산기슭의 하늘이 밝아올 때
새벽 물안개가 걷혀 가는 산길에서
나는 밤새 나를 기다리는 친구 나무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제각기 다른 몸짓을 하면서 나를 반겨 주었다

밤새 내린 눈이 하얗게 쌓인 겨울 새벽
그들은 머리며 등이며 온몸에
흰 눈을 쓴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따뜻한 마음의 눈으로 쓰다듬어 준다
그리고, 그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나의 화폭에 소중하게 옮긴다

철 이른 봄이 오면
겨우내 벌거벗었던 그들의 몸에는
어느새 파아란 물기가 오르고
샛노오란 연두색 나뭇잎 사이로
생명의 싹이 터 오른다

새벽의 산길에서 나는
그들이 숨 쉬며 외치는 생명의 소리를 듣게 된다
나는 그들이 생명을 찬미하는 모습을
나의 캔버스에 소중하게 옮긴다

어느 이른 봄날 아침
아직 봄눈이 산기슭에 남아 있던 산길에서
손과 발이 잘리고,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채
땅 위에 뒹굴며 신음하고 있는 그들을 만났다

사람들의 날카로운 톱 자욱이 할퀴고 지나간 산길에서

그들은 고통을 삼키는 슬픈 눈으로 나에게 이야기했다